이 사람들은 왜 이럴까?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우리 때랑 많이 다르다"라고 많이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변화/발전하면서 많은 부분들이 달라진 것에 대한 감상이시기도 하며 세상이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게 해 주는 마법의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삶이든 현재의 우리의 삶이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 속에 있는 우리들도 문제가 뭔지 확실히 압니다. 변화라는 것은 좋은 것만 있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제 압니다.

남녀 갈등이 없던 시대에는 젊은 청년/청소년들이 남녀로 갈라져서 싸우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오히려 지금 시대보다 "표현의 자유"가 더 원활히 작동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마치 기준이 없어지고 사람들은 방황하는 것 마냥 마음의 안정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잊어버린 세월이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근 10년 동안 급격히 하강하는 시간들을 보낸 거 같습니다.

 

사람들의 삶에 분노를 주입시키고 대립하게 만들어서 마치 "감염성 정신병"처럼 약한 사람들에게 전염시키는 사상이자, 현실에서 충실하게 삶을 사시는 분들(정상인)이 보기에 "왜 저러지?"싶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상,

 

많은 남성층들, 정상적인 여성분들이 혐오하는 사상에 대해 분석해보고 정리하여 "거짓과 비정상"을 경계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페미니즘의 사전적인 의미

"페미니즘(Feminism)"

 

female + -nism의 합성어로, 사전적인 의미는 위 이미지 속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현실로 알고 있습니다.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적 사고의 탈피"라는 개념에서부터 이미 사상(이론) 안에서 "정반대의 있는 것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며 이는 "페미니즘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입니다.

 

적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과연 이론인지 아니면 광적인 사상인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실 페미니즘의 사전적인 의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2가지 모순의 카테고리로 나뉘게 됩니다.

 

1. 탈피해야 할 특징이라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울 수 있는 것

2. 기존의 개념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마음대로 바꾼 것

 

 첫 번째의 특징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의 신도들을 칭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라고 합니다. 저는 이 페미니스트들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특징을 적어 보려고 합니다.

 

 1.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여성이라도  공격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에 타인이 반대하는 경우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정도로 넘기는 경우가 많고 

 "왜 그렇게 생각하였는가?"라고 다시 되물어 봐서 본인이 생각하여금 합당한 이유라면 다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다릅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말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발언"을 하면서 "상대방을 어떻게 해서는 말 못 하게 막아야 한다"가 목표입니다. 

 

대표적으로 최근의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예로 들어 보면

 

"N번방은 텔레그램으로 발생하였는데 왜 일반인들이 많이 쓰는 카카오톡을 검열하냐, 이는 정부가 빅브라더가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발하자

 

페미니스트, 그리고 해당 법안을 찬성하는 측의 정치인들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잠재적 범죄자를 사전의 차단하는 좋은 규제(법)인데 왜 반발하냐, 당신 범죄자냐? 범죄자가 아니라면 왜 이 규제에 대해서 반대하냐?"라고 합니다.

 

사실 이 건을 제외하고도 페미니즘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일관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홍대 몰카, 워마드 범죄행위 등 범죄행위들에 대해서도 방어적이며 한없이 공격적인 반응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외모가 예쁜여성, 몸매관리를 열심히 하는 여성 또한 "성상품화"라는 명목으로 "여성인권"을 낮추는 존재로 격하시키며 해당 여성들을 비하하는 것 또한 서슴치 않습니다.

 

2. 기존의 개념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마음대로 바꾼 것

 

페미니즘의 시작은 바로 "여성주의 = 여성 우월주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지지가 부족하여 유지가 불가능해지자, "사회적 소수층"들의 지지까지 얻기 위해 손을 뻗쳤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힘"을 보충하기 위해 거품 같은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바로 "생물학적인 성(Sax), 사회적인 성(Gender)"이라는 개념입니다.

 

사실 원래 생물학적인 성은 사회적인 성과 똑같은 말입니다.

 

Gender(젠더)는  성(性)에 대한 영문표기 섹스(Sex) 대신 새로 쓰기로 한 용어로, 1995년 9월 5일 북경 제4차 여성대회 GO(정부기구) 회의에서 결정했습니다.

 

더 말하기 앞서 왜 "사회적인 성"이라고 명의 했는지에 대해 말하기 전에 "페미니스트"들의 "젠더 개념"에 대해 먼저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안드로 진: 남성성과 여성성이 섞인 정체성

에이 젠더: 어떤 성별로도 인식하지 않은 사람

뉴 트로이스:  제3의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

데미 젠더: 어떤 젠더 정체성을 지녔다고 해도 부족함을 느끼는 젠더

바이 젠더:남성 여성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정체성

젠더리스:  성별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

트라이 젠더: 남성 여성 제3 의성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

팬 젠더: 모든 젠더 특성을 가졌다고 인식하는 사람

젠더 플루이드: 유동적으로 선택하는 정체성

젠더 플럭스: 강도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고 느끼는 정체성 

...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고, 기준도 없고, 경계도 모호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보이며, 어떤 사람은 젠더가 50가지가 넘는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100개가 넘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게 학문이라고 생각 한 분들에게 죄송하.. 지도 않습니다. 그냥 말장난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이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무엇인가 특별해 보이고 자신이 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겠다는 우월감에 빠지게 만들려는 것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그리고 현실도 그렇습니다.

 

즉,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젠더 이론"은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없기 때문에 그 속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명확하게 인지 못하고, 기본 뼈대도 없는 이론이기 때문에 

그저 "내가 하는 말이 맞아"라는 식으로 타인을 묵살시키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즘 공부 하세요, 모르면 공부해야지" 라는 식의 말들 밖에 못하는 것입니다.

사상(이론)자체가 문제 투성이라서 사람들이 공부라기보단 세뇌교육이라고 보는 걸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페미니즘의 불편한 구조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에서 출발하였지만, 적은 지지층과 불안정한 기준 등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성소 수층들의 지지까지 얻기 위하여 "무리하게"  확장시킨 결과,

 

"시작점이었던 여성 우월주의"에 부합한 성소수자인 "레즈비언"만을 유일하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으며, 다른 동성애는 표면적으로는 위한다고 말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헐뜯거나 자신들의 언어유희를 위한 용도로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어떤 분들은 "거짓말하지 마라, 일부를 가지고 전체로 만들지 마라"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페니니즘의 뿌리부터, 현재의 개념까지 모두 "기득권인 남성이라는 성별로부터 탈출(배제)"라는 기본 뼈대를 가지고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레디컬 페미니즘(급진적인 여성 우월주의)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강력하게 증오감을 키우기에, 시간이 지남으로써 "남자는 배제해야 하고 여자들끼리 연애/결혼하는 삶으로 가야 한다"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또 다른 반응은 "레디컬 페미니즘이랑 기본적인 페미니즘은 다르다, 극우 성향이랑 그냥 우파 성향이랑 다른 것처럼 우리도 다르다"라고 말씀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페미니즘의 뿌리는 "여성 우월주의"이며 이는 극단적인 생각이 시작점이기에 비교 대상이 다르며 그리고 원래라면 오래전에 없어졌던 사상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또한 페미니즘의 문제는 생물학적인 성을 기준으로 이미 적(탈피 대상)을 "정했다"라는 점입니다.

좌파/우파는 남녀노소,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규명할 수 있는 기준점이 있지만,

 

페미니즘은 기본적인 개념 자체가 "적의 존재"를 규명했다는 것이 다른 정치적 사상의 스펙트럼 형상에 비해 결이 매우 다른 형상을 띄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우파 성향이 극우 성향으로 가는 가능성이 존재함"이 "레디컬 페미니즘≠페미니즘"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남성우월주의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법적으로도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법 조항은 단 한 개도 없으며, 남녀를 떠나 개인의 책임에 대한 처벌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성우월주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페미니즘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기 때문

 

"유리천장"이라고 모든 직업의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표현하면서 "아무튼 이건 남성의 가부장적인 사회가 베이스 였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로만 판단하고 상대방에게 억지로 의견피력 합니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화되었습니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며 행복의 연속이 되기에는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남녀노소(사람) 똑같으며 우리 모두 다 삶을 살아가는 동반자들입니다.하지만, 개개인의 선택지는 "노력하느냐, 회피(도주)하느냐"라는 선택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꾸준히 노력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동료, 친구, 가족, 애인으로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매우 떳떳하고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배움을 느끼고 소중히 한다"라는 것을 하시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이에 반대되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본인의 노력보다는 다른 사람의 탓으로, 환경의 탓으로, 더 나아가 사회 시스템 탓으로 계속해서 "본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 회피"를 거듭하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저는 "악의 순환고리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사람들은 매우 외로우며 본인에 대한 공격이라고 판단되는 것들에 대해 매우 격앙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주변 사람들이 서서히 떠나면서 더더욱 고립되는 악의 순환고리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본인들의 노력이 시작이 되어야 그 순환고리에서 나올 수 있는 사람들,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장 마음에 편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책임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부터"라는 것, "남성에 대한 모든 것"입니다.

 

회피를 거듭 반복하던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매력적이고, 이 시대의 "진실의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슬픈 일인지 좋은 일인지, 본인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엇비슷한 선택들을 반복해왔던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아래로 집단을 형성합니다.

 

이제 개인의 영역이 확장되어 집단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하는 이 시점이 "페미니즘의 변화점"이 되었습니다.개개인의 생각이라는 특성이 변질되어 집단의 생각 = 개개인의 생각이 되었으며, 이는 곧 "현실에 무리하게 대입시켜줄 만한 힘"의 생성이 되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불안정한 뼈대를 가지고 시작했으며 적이 존재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사상이기 때문에, "페미니즘 집단"은 자신들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쉬운 단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 묵혀서 "자신들에 대한 혐오"로 변질되었던 이전을 생각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기는 싫어합니다.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은 타인(사회)이 조종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돌아가기 싫어합니다.

 

그렇기에 "집단"으로된 지금 "개인"이었던 이전에 비해 실행력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이제 "페미니즘 단체"는 정보를 통제/편집하기 시작합니다.

 

기존의 "범죄자는 나쁜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처벌받는다"를 성별로 나누어 "여성범죄" "남성 범죄"라고 나누었습니다. 이에 따라 "여성범죄", "남성 범죄"에 따라 매우 다른 반응들을 보여주는데

 

"여성범죄"에 대해서는 "여자라서 이렇게 뉴스에 나왔다", "여자라서 당했다", "피해자(남자일 경우)가 잘못했을 것이다" 등 자신들의 절대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려 정보/여론을 생성했습니다.

 

그리고 반대되는 "남성 범죄"의 경우

 

"남자는 역시 잠재적 범죄자들이다", "대부분의 (성) 범죄 피해자들은 여자들이다, 여성으로 살기 힘들다", "남자 피해자라서 이렇게 빨리 여성 피의자를 빨리 잡는 것이다" 등 남성이라는 키워드는 무조건 적이라고 규명하고 반응합니다.

 

또한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법/정책/규제"영역에 대해서도 손을 뻗치기 시작합니다.목적은 단 하나인 "페미니즘 집단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것입니다.

 

"페미니즘 단체"는 이제 알았습니다. 억지로 힘으로 밀어붙이더라도 들어준다는 것을 말이죠, 그게 떼쓰는 듯이 해도 말이죠. 하지만 이런 써먹기 좋은 사상 밑으로 모인 단체들을 가만히 둘리 없는 또 다른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은 현실화시켜줄 돈과 힘이 있고 진실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저 자신의 권력을 올려주거나 유지시켜줄 "무언가"를 더욱 원하는 사람들, 바로 "정치인"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가 자신의 일인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은 매우 이용하기 좋은 대상입니다.

 

지원 정책, 지원금, 듣기 좋은 말 같이 좋은 먹이로 길들이면 알아서 정치인들의 비판/비난을 막아주는 가드로도 사용할 수 있고 자신들의 법안이나 권력이 힘이 부족할 때 힘을 억지로 실어서 정치인들이 원하는 대로 실현시켜줄 "검은색 마스터키"로 쓰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 단체도 모르는 게 아니었고 오히려 서로 이용하는 관계 "상호거래"였습니다.

 

페미니즘 단체가 커짐에 따라 유지를 위한 지원(금전, 권력 등을 포함)이 필요했으며 페미니즘의 사상 자체가 기준이 없고 현실에서 동떨어졌기 때문에 "현실의 결과들"이 필요했는데 "정치"에 개입으로 인해 그게 존속/유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페미니즘의 끝은 "개인의 파멸"이었습니다.

 

미국 유명 아티스트였던 "앤디 워홀"에게 격렬한 증오를 느껴 살인 미수라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

"밸러리 진 솔라나스"를 다시금 생각해봐야 합니다.

 

솔라나스는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하고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습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로 이사 간 솔라나스는 그곳에서 대표작인 《SCUM 선언서》를 저술했는데 이 선언서 속 내용은 “정부를 전복하고 화폐 체제를 제거하며, 완전한 자동화를 도입하고 남성이라는 성별을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밸러리 진 솔라나스는 무정부주의, 강렬한 남성 혐오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에 뉴욕 시로 이사 가 서작 가로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발래리는 앤디 워홀을 만나서 자기가 쓴 극본 Up Your Ass를 사용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극본을 앤디 워홀에게 주었지만  이후 그녀는 워홀이 극본을 분실 또는 훔쳤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솔라나스가 잃어버린 극본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자 앤디 워홀은 자기 영화 I, A Man에 
단역배우로 출연시키고 25불(당시 1달러로 영화 티켓 2장을 구매 가능했다)을 지불하였습니다.

 

1967년, 솔라나스는 《SCUM 선언서》를 자비 출판했습니다.

 

올림피아 출판사 사장 모리스 기로 디어스가 솔라나스에게 다른 글도 출판할 것을 제안했는데, 솔라나스는 계약서 내용을 보고 기로 디어스가 자기 글을 갖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해하였지요.

 

그 후 기로 디어스와 워홀이 자기 작품을 훔치려 한다는 확신에 빠진 솔라나스는 1968년 봄에 총 한 자루를 구입했습니다.

 

1968년 6월 3일, 솔라나스는 기로 디어스를 찾았으나 주말 휴가를 가 있었기에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워홀의 작업소인 팩토리를 찾아가 그에게 총 세 발을 쏘았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총알은 빗나갔으나 마지막 총알이 워홀에게 치명상을 입혔죠.

 

그리고 같은 자리에 있던 미술평론가 마리오 아마야를 쏘았고, 워홀의 매니저 프레드 휴즈를 영 거리 사격으로 쏘았으나 탄피 배출 불량으로 다행히 총이 걸렸습니다.

 

이후 솔라나스는 경찰에 자수했고, 살인, 폭행, 불법 총기 소유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솔라나스는 편집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석방된 뒤에도 《SCUM 선언서》(남성 몰살, 무정부주의 주장을 했던)를 홍보하고 다니다가 198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폐렴으로 죽었습니다.

 

 

발레리 솔라나스를 예시로 들며 "정신병에 걸린 사람과 비교한다는 것이 모욕적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페미니즘의 끝"은 다를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페미니즘의 허구의 유토피아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가지게 해 줬습니다.

 

페미니즘 기준으로 나온 말도 안 되는 떼법, 규제, 마음대로 하려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들, 페미니즘에서 파생된 모든 것들을 부정/힐난 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미니즘은 선을 넘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삶에서 중요한 동료"와 "사회를 붕괴시키는 악"을 매우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개인과 사회의 특징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합니다.

 

이 선을 넘지 않은 것들은 정도에 따라 웃고 넘기고 의견이다 생각하고 넘길 수 있습니다만 이 선을 한쪽이 넘는 순간 "좋든 싫든 변화"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며, 사악하면 안 됩니다. 비열하고 사악한 변화가 반복되는 순간 세상은 크게 흔들립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주축으로 이 선을 매우 심하게 넘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과연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들의 미래는 과거와는 다르게 흘러갈까요? 

 

저는 절대로 좋은 결말이 날 수 없다고 봅니다. 페미니즘 속 허구의 분노보단 정상적이고 평온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진지한 분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동료이자 삶의 동반자 들입니다. 이 말의 숨겨진 뜻은 좋든 싫든 우린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입니다."적을 만드는 순간, 상대도 당신을 적으로 판단한다"라는 것,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들의 뜻은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음은, "비열한 악수들"(정치적 거래)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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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국가가 노후를 보장해줄 수 있을까?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의 어르신들이 생각하시던 "적금", "예금"과 같은 금융 상품과 정부에서

강제로 가입시켰던 "국민연금"으로는 미래의 노후 생활을 대비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는 걸 말이에요.

 

"적금", "예금"의 경우 전 세계적인 금리 인하와 복합적인 경제적 변화로 인해 1970년도 ~ 2010년도 초반의 연 10% 이상의 세전금리(세금을 제하기 전)처럼 높은 이자를 기대하기에는 힘들죠.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연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국민들의 노후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이전부터 출생아 감소, 인구절벽, 1인 가구의 증가 등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점 등등,

한때 크게 이슈가 되었던 "국민연금 고갈"을 이후로 많은 분들의 의식이 바뀌면서 동시에  "국민연금 효용성 논란"에 빠졌었습니다.

 

물론 이 논란이 지금의 40,50,60의 나이대이신 분들은 걱정이 덜하지만, 

현재의 10대, 20, 30대의 청, 장년층들에게는 "부모님 세대가 받던 만큼의 연금을 받을 가능성이 0"이라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가 되었다는 것은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2030 세대들은 어떻게 노후를 대비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제가 생각하는 "현재 청년들의 노후 대비"에 대한 생각을 포스팅 함으로써

많은 분들이 각자 본인만의 노후 대비를 생각해보게 되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과연 "국가"가 개인의 복지까지 챙길 수 있을까?

이미 이 부분을 언급하기도 전에 현재 "국민연금"의 문제성에 대해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든 싫든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 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NO"입니다.

 

어떤 분들께서는 "국가가 국민들의 노후까지 대비해줘야 한다"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나, 그 생각으로 나온 게 국민연금이라는 제도였고 결국 이 제도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로 "출생률"입니다.

 

출생률이 유지가 안되고 계속 저하될 경우 미래에 "일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청년층들의 수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출생률이 하락하고 미래의 청년들의 수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이전 세대의 부담 증가"가 아닌

"이후(미래) 세대의 부담 증가"는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세금의 지속적인 증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그냥 세금이라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세금"은 국가적으로 볼 때는 당연한 것이지만, 개인의 관점으로 볼 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지출"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이 하루 8시간, 주 5일로 2021년 기준 8720원 최저임금으로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해서 다음 달 1,674,240원이라는 월급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받는 월급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 고용보험, 소득세, 지방소득세"를 다 제한

1,519,210원을 받게 됩니다. 퍼센트로 계산하자면 "9.26%"의 금액을 제하는 것입니다.

 

만약 400만 원의 월급(세금 제하기 전)을 받는다면,

3,426,750원이며, 573,250원이 세금으로 빠져나가며 이는 월급의 "14.3%"이 없어집니다.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소득에 따라 더 많은 세금을 가져갑니다"

여기에 종합소득세도 따로 있죠.

 

종합소득세 세율 

어떤 분들께서는 "많이 버는 만큼 세금을 그만큼 내는 게 무엇이 나쁘냐?"라고 하십니다만,

그것은 타인의 의견일 뿐, 당사자가 받아들이는 입장으로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보자면, 급여 = 노동의 가치입니다.

거기의 정부는 "강제적"으로 여러분들의 노동의 가치에 일정 부분을 가져갑니다.

 

물론 정부 사업이나, 국가의 발전/보수를 위해 필요한 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려면, "납득할만한 세율"이 기본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한 나의 노동의 대가(가치)를 누군가 와서 50%를 강제로 가져간다면,

과연 그 사람은 합당하게 내야 할 돈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것은 그저 "가설"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적으로, 현실적으로 계속해서 나오는 문제점이자

국민연금의 자금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점이 온다면, 더욱 크게 체감될 "예정된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더욱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많기 때문에 다음 포스팅에 상세하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 삶의 후반이라는 것의 특징에 대해서

노년의 특징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할 부분이 바로 "청년의 특징"입니다.

 

청년의 특징은 "혈기왕성, 체력(건강), 사회적 부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쉬움, 기본 자금이 다른 연령층(특히 중년층)에 비해 적음"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연령층 중에서 "일(개발)을 많이/열심히 할 수 있는 나이"는 청년일 때가 가장 많습니다.

어떤 책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10%만 맞고 90%는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 노년의 특징과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노년의 특징은 "체력(건강)이 청년 때와 현저히 떨어짐, 사회적 관계 多, 일자리 부족"이 대표적입니다.

청년일 때와 다르게 체력/건강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고 봐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나이를 먹고, 20대일 때와 30,40대의 시야가 다른 것처럼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자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노년층이 되면 무조건 애잔하고 슬픈 연령대이냐? = 절대 아닙니다.

바로 "지난 모든 시간의 결과물"을 보는 연령대입니다.

대표적으로 결혼, 자녀, 벌어둔 자금, 가족관계 등 모든 것들이 나오는 연령대입니다.

 

즉, 미래 지향적이고 좋은 인간관계와 자기 계발의 차이, 열심히 운영해온 자본에 따라

우리가 맞이할 노년의 모습은 무조건 달라집니다.(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한번 포스팅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의 준비"는 젊었을 때 "얼마큼 준비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이미 노후일 때 준비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국민연금의 부재와 현실을 다 고려한 노후를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수익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라 = 만고불변의 진리

2010년대에 들어서 이전의 절약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젊을 때 즐겨야지"라는 분위기가 장악했을 무렵, 나온 용어 YOLO족

 

YOLO(이하 욜로)족이 인생의 정답일까요?

많은 분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시겠지만, 전 매우 강력히 "NO"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합니다, YOLO라는 것도 청년실업, 저성장, 결혼을 못하는 사회 등 어두운 면을 자주 보게 돼서 

오히려 젊을 때 놀자고 생각한 것이라는 걸 잘 압니다.

 

저도 한 때 욜로라는 것이 오히려 맘 편하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여행도 꽤 다녔고 다양한 소비를 해봤습니다.

하지만 결국 소비는 한계가 오는데 바로 "자금"이 떨어지는 순간이 그 최대 한계입니다.

 

기업이나 정부의 관점으로 봤을 때 개인의 지출이 어마 무시하게 늘어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물론 가계 대출의 증가를 조금 걱정합니다)

 

오히려 더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의 돈의 흐름이 윤택해진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부에서는 "소비로 인한 세수확보"가 늘고 기업에서는 "소바자의 높은 구매력"을 바탕으로 많은 수익을 올립니다.

 

그럼 개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서비스나 물건만 남습니다.

그런데 서비스와 물건은 평생 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신차를 구매하고 나중에 중고로 팔 때도 "감가상각"된 자산이 되며 명품을 구매하고 다시 판매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비스는 그럼 다를까요? 서비스도 결국 "원가+a"입니다.외식을 할 수 있었어도 결국 사람은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소비를 안 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좋든 싫든 소비는 삶의 일부분인 것에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등 돈이 많은 부저가 아닙니다.

 

소비를 통해서 "행복"을 얻는 것은 대부분 효율이 나쁘며 끝은 명확합니다.

 

욜로가 오래가지 못하는 큰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도  "자금의 소모"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월급을 여행, 명품에 탕진해서 행복을 사봐도 "원초적인 행복"을 느끼기에는 너무 짧고, 자금은 매우 급속도로 떨어집니다. 

 

그러자 자신의 재산이 사라지는 걸 느끼게 되면 행복했던 그 상황이 깨지며,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만약 여행을 떠나기 위해 자신의 직장은 나와있는 상태라면,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이전의 자신의 자리를 꿰찼다면, 그때는 이미 후회하기에는 늦었습니다. 

 

이 "행복"이라는 부분도 추후 자세한 내용으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여기서 노후 준비와 무슨 연관성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결국 앞서 말씀드렸던 부분과 마찬가지로 "현명한 절약"이 미래의 노후 준비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출을 줄임과 동시에 개인의 개발을 통한 소득의 증가도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자본의 크기"에 따라 할 수 있는 방법, 소득의 규모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4. 수익의 파이프 라인을 늘리자, 불로소득을 들어보셨습니까?

불로소득이란 간단히 설명하자면 "노동을 하지 않고 얻는 소득"을 뜻하는 단어인데,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이 뜻을 "공짜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로소득은 아무런 대가 없이 주는 소득이 아니라,

"이자, 배당, 임대료 등의 투자 수익, 유가 증권이나 부동산 등의 매매 차익 등을 포함하는 재산 소득 외에, 상속, 연금, 복지 등"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즉 대부분 재산으로 재산을 만드는 것이죠.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비중이 큰 영역이 아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파이어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대부분의 젊은 청년층은 "자본금"이 없어서 주식이나 펀드 해봤자 손해라고들 합니다.

맞습니다.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

 

"자본금이 적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투자 또한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Yahoo Finace

여러분이 만약 3년 전 엔비디아라는 회사를 알고 100만 원 치를 샀다면 지금 현재 가치는 700만 원입니다.

그 당시에 700만 원이 없더라도 100만 원 치만 사뒀더라도 수익금은 600백만 원이죠.

이는 그 어느 적금,예금으로는 절대 수익을 올릴 수 없는 차이입니다.

 

물론 주식이든 뭐든 투자라는 것은 기본적인 지식과 함께 미래를 내다보는 판단력, 빠른 정보수집, 자본금 등

매우 중요합니다만, 그 이전에 제가 설명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투자도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1년 뒤에 주식 투자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돈을 모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시간이 주는 "변화"입니다.

 

지금의 투자 트렌드들이 미래의 투자 트렌드와 같으리라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많으며 물론 손실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점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물론 주식이라는 투자 방식도 있지만 다른 부동산이나 재산으로 이득을 보는 방식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개개인의 자본 규모와 타입에 맞춰서 좋은 투자 방법을 찾는 것이 첫 번째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전부 다 일맥상통한 부분이 바로 "시간에 따른 가치의 변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를 하는 개인의 판단이 매우 중요한데

저는 주식을 "도박"처럼 하면 "도박"이 될 것이며, 주식을 "투자"라고 생각하면 "투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5. 본인의 연금을 직접 만들자. "배당"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식의 경우 각 회사마다 배당금을 주는 곳이 존재합니다.

"배당금"은 이익금의 일부를 주주에게 나눠주는 것인데, 주식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주는 것입니다.

 

즉, "배당금"으로 연금처럼 매달/매분 기마다 수익을 볼 수 있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국내 주식은 제가 안 해서 모르지만 미국 주식의 경우 배당금을 주는 회사들이 많고, 

또 오랫동안 주식을 꾸준히 지급해오는 "배당 귀족"이라는 주식들도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미국 시장은 국내 시장보다 규모가 크고 역사가 길기 때문에 

20년간 배당금을 꾸준히 주는 회사들도 많이 상장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방식 중 하납니다. 

주식으로 배당금을 얻는 방식은 크게 2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1. 배당 당락일 이전에 매수해도 배당금을 준다.

2. 주식의 주가가 오르면 매도를 하여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은 최소 10년 동안 납부를 해야 연금이 나오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배당금으로 만드는 연금의 경우 자본금의 규모만 충분하다면, 바로 분기마다 배당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빌라를 구입하여 월세를 받고 수익을 올리는 방식도 있습니다.(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필요한 자본 규모가 높아지고 있고, 소액으로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소액으로도 꾸준히 구입이 가능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다른 대체 투자 종목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사실 10년 전의 우리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매우 달라졌습니다.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매우 달라졌는걸 20대인 저도 느낄 정도로 순식간에 변화합니다.

 

그 변화 속에 기존의 보장될 줄 알았던 것들이 사라지고 없어짐에 따라 많은 불안감이 생깁니다.하지만 보장이 없어졌다고 해서 "개인의 자유"는 변화하지 않았고 힘든 시련이 와도 우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노후 준비를 잘해서 안정적인 자금 운용이 가능해지면, 자신의 노후에 대해 안정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게 될 수 있게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다.앞으로 올릴 금융 관련 포스트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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